작년 리보(Libor·런던 은행간 거래 금리) 스캔들로 불거진 금리 조작 파문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싱가포르의 대형 은행 20곳이 금리 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금융 시장 전문가의 도덕성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은행 외환 트레이더들의 환율 조작 의혹에 영국 금융감독청(FCA)이 조사를 시작했고, 국제 금융 규제 기구도 감독 구조 손질에 나섰다.
◆ 국제 금융 규제 기구, 외환 시장 환율 시스템 감독 채비
영국에서 불거진 환율 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조사가 임박했다. 국제 증권관리위원회(IOSCO)가 내달 각종 거래 기준으로 활용되는 벤치마크 금리의 투명성·감독 체제 개선을 위한 최종 지침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블룸버그가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은행의 외환 트레이더들이 환율 시장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WM/로이터 환율을 관행적으로 조작해 왔다는 의혹이 불거진 데 따른 조치다. 블룸버그는 “IOSCO가 발표하는 지침에는 WM/로이터 환율과 관련한 내용도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영국 FCA는 이 문제에 관한 사전 조사를 위해 도이체방크, 시티그룹 등 4개 대형 은행에 정보를 요청했다.
마이클 바니에르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의 대변인인 샹탈 휴스는 이메일 성명에서 “모든 벤치마크 금리가 비슷한 약점을 갖고 있어 완결성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올여름 벤치마크 금리 개선에 대한 제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통화감독청(OCC)도 조사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브라이언 허바드 OCC 대변인은 “이 사건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다른 규제 당국과 함께 조사에 착수하겠다”며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조사를 벌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밖에 마헨드라 시레가르 인도네시아 재무차관은 “정부와 규제 당국은 국제적인 투명성 개선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 싱가포르, 20개 은행 금리 조작 잡아내
아시아 금융 허브를 지향한다던 싱가포르에선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은행들이 금리를 조작해 온 사실이 드러나 금융계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 14일 싱가포르 통화감독청(MAS)은 “싱가포르에서 영업하는 20개 은행의 트레이더 133명이 시보(Sibor·싱가포르 은행 간 거래금리)와 환율 등을 조작해 왔다”고 밝혔다. MAS는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지 않는 동안 금리는 성공적으로 조작됐다”며 “이는 트레이더들의 직업적 도덕성이 결핍됐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MAS는 리보 스캔들이 세계를 강타한 작년 여름부터 자국 금리 산정 체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과정에선 은행 트레이더들의 이메일·메시지 대화 기록을 2007년부터 조사했고, 이와 관련해 1억 페이지가 넘는 문서를 검토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이들 트레이더 싱가포르은행연합회(ABS)가 매일 오전 11시30분 11개 은행의 제안을 취합해 결정하는 시보를 관행적으로 조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이렇게 조작된 금리는 2000억 싱가포르달러(약 180조원) 규모의 채권 거래 가격 산정에 쓰였고, 2조 싱가포르달러(약 1800조원) 규모의 파생상품 계약에도 적용된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가장 큰 처벌을 받게 된 은행은 ING, RBS, UBS 등 글로벌 은행 세 곳이다. 이들 은행은 벌금 대신 앞으로 1년간 10억~12억 싱가포르달러(약 8995억~약 1조794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이 대손충당금에 대해선 싱가포르 중앙은행이 금리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 밖에 뱅크오브아메리카(BoA), BNP파리바, 바클레이스,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체방크, 시티은행, 스탠다드차타드(SC), JP모건체이스 등 글로벌 은행과 싱가포르 현지 은행 세 곳도 조작 가담 규모에 따라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게 됐다. 사건에 연루된 트레이더도 보너스 삭감 등의 징계를 받게 됐다. MAS는 “133명의 트레이더 중 4분의 3은 이미 처벌을 받거나 해직됐고, 나머지 트레이더는 보너스 삭감과 감봉, 업무전환 등 처벌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싱가포르와 같은 금리 조작 사태가 드러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법률회사 루이스 실킨의 오웬 왓킨스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렇게 대규모 은행이 금리 조작에 연루됐다는 건 앞으로도 리보 조작과 같은 사태가 몇 건은 더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은행들에 대한 나쁜 소식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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