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2일 토요일

청년회계사 양심고백 "회계감사 하나마나"

“지금 같은 현실에서는 기업 회계감사는 하나마나입니다.”

청년회계사모임이 ‘외부감사 부실’을 고발하고 나섰다. 인터넷 카페에서 결성된 이 모임에는 국내 회계법인 소속 10년차 이하 공인회계사 100명 이상이 활동하고 있다.

이모 청년회계사모임 회장은 “(감사대상 기업이) 오류수정이나 자료보완 등 감사인의 요청을 무시하기 일쑤다. 외부감사인이 강제할 방법도 없다. 규정상 한정의견이나 의견거절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함부로 극단적인 판정을 내릴 수 없다.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지나치게 큰 탓이다. 상장법인이면 상장폐지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 회계법인에게 감사대상이자 고객이다. 회계법인은 기업으로부터 수임료를 받는 처지다. 기업 회계담당자는 자료요청이나 오류수정을 거부해 부실감사를 유도한다. 청년회계사모임은 상습적으로 자료요청에 응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이나 검찰에 고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외감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감사인 등이 제출을 요구하는 자료를 거부·방해·기피한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회계사 “자료요청하다 욕먹기 일쑤”



청년회계사 양심고백 "회계감사 하나마나"
KPMG삼정회계법인 3년차 회계사 박모씨는 지난해초 H그룹 계열사를 감사했다. 현장감사 이튿날 회사 담당 직원이 휴가를 떠났다. 다른 직원에게 자료를 요청하자 “자료 요청이 너무 늦었다”고 질책하며 “해당 자료를 줘야하는 근거나 법령을 대보라”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박 회계사는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하면 입장이 난처해진다”고 말했다.

심지어 기업 담당 직원이 감사인 교체까지 요구한다. PWC삼일회계법인 4년차 회계사 김모씨는 지난해초 모 건설사에서 파견돼 현장감사하다 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김 회계사는 “건설사 임원이 우리 매니저와 함께 가진 회식 자리에서 회계사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오류수정과 추가자료를 요구하다가 미운털이 박힌 것”이라며 “매니저가 재계약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의견거절 사안 아니면 넘어가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기업이 감사인의 자료 수정 요구를 무시하는 사례가 부쩍 잦아졌다.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으로 연결재무제표 작성이 의무화된 탓이다. 모기업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자회사가 결산자료를 감사 전에 모기업에 보내야 한다. 자회사 재무제표에 하자가 발견되면 모회사의 연결재무제표까지 손봐야하는 탓에 자회사 회계 담당자는 책임추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오류수정을 기피한다.

모회사 회계담당자가 오류수정을 거절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PWC삼일회계법인 3년차 회계사 이모씨는 2011년 대기업 L사의 계열사를 감사하다가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당시 투자자산 100억원 중 10억원 가량이 오기됐다. 하지만 계열사 회계담당자는 ‘모기업 담당임원이 바꾸지 말라고 했다’며 감사인의 수정 요청을 거절했다. 오류를 바로 잡으면 모회사 당기순이익까지 바뀌는 상황이었다.

이 회계사가 매니저에게 “감사 지적사항이 반영되지 않으면 감사부실로 이어진다”고 하소연하자 매니저는 “재계약이 코앞이니 그냥 넘어가자”고 설득했다. 이 회계사는 “해마다 1000명이 넘는 회계사가 배출되고 있다. 회계법인간 수임 경쟁이 심해지다보니 외부 감사인의 지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 감사인 ‘을’ 신세로 전락

기업 회계담당자가 감사인에게 기업 재무제표를 대신 작성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청년회계사모임이 2~4년차 회계사 145명을 조사한 결과 기업 회계담당자들은 감사에 필요한 재무자료의 20%정도만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감사인이 직접 작성해야 한다. 외감법은 ‘감사대상 기업은 회계 감사에 필요한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자본변동표, 현금흐름표, 주석을 작성해 감사인에게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감사인이 회사 회계담당자가 해야 할 일까지 처리하다보니 감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감사인이 자기가 작성한 재무제표를 감사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감사기간 중 찾아낸 회계자료의 수정업무도 감사인에게 떠넘긴다.

감사인 지위가 땅에 떨어지다 보니 황당한 요청도 서슴지 않는다. PWC삼일 4년차 이모 회계사는 감사기간 동안 감사대상 기업 회계팀장의 대학원 숙제까지 대신 해줬다. 이 회계사는 “매니저에게 불만을 토로하자 매니저는 ‘재계약이 임박했다. 어려운 일 아닌데 해주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 부실감사 부추기는 덤핑 수임

청년회계사모임 소속 회계사는 부실감사의 주범으로 ‘저가수임’을 꼽는다. 수임료가 낮아지면 감사 투입 인원과 시간이 줄 수밖에 없어 부실감사를 피할 수 없다는 것.

조선비즈는 금융당국이 회계법인 품질관리제도를 도입한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100대 상장사(매출 기준)를 대상으로 회계법인이 바뀐 연도의 수임액을 조사했다. 조사대상 기업 절반 이상이 전년보다 수임료를 낮춰 지급했다.






/그래픽=박종규 (hosae1219@gamil.com)
/그래픽=박종규 (hosae1219@gamil.com)
대한항공(003490)은 2010년 언스트앤영한영에서 KPMG삼정으로 감사법인을 바꾸면서 수임료를 5억원에서 2억9500만원으로 낮췄다. 코오롱(002020)도 2010년 딜로이트안진에서 KPMG삼정으로 감사법인을 변경하면서 수임료를 2억4000만원에서 1억4000만원으로 줄였다.

100대 기업은 지난 7년 동안 84번 회계법인을 교체했다. 이 중 39건(46.4%)에서 수임액이 줄었다. 수임액이 동결된 사례는 14건이다. 이 회장은 “수임액이 동결됐다고 하더라도 감사시간 연장과 물가상승율까지 감안하면 실질 수임액은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수임료가 줄면 감사시간이 짧아지고 감사시간이 줄면 감사 품질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조연주 한국공인회계사회 감사담당 연구위원은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배정제의 확대 적용이나 감사보수 가이드라인 제정 등이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감사인(회계사)이 기업의 눈치를 보는 환경에서는 주주, 채권자들이 보는 감사보고서의 왜곡 위험성을 키운다"며 "그 피해는 힘없고 정보에 어두운 서민들이 받게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청년회계사들은 이런 부분에 있어 무력감을 느끼며 회계감사 업무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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