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여름휴가 때 읽어 볼만한 책을 사내 인트라넷(LGIN)에 게시해 관심을 끌고 있다 (…) 김반석 LG화학 사장은 자신의 잠재력을 신뢰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믿는 만큼 이루어진다](노먼 빈센트 필)를 권유했다.” 1)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 직원들에게 ‘승리를 꿈꾸지 않는 사람은 이미 패배한 것이다’라는 서양 속담을 자주 인용할 정도로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한다. 이 사장이 주위 사람들에게 노먼 빈센트 필 목사의 [적극적인 사고(불가능은 없다)]를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2)
“필자는 대학입학 시험이나 입사 시험에 떨어져 낙심한 젊은이들에게 권하는 책이 있다. ‘긍정적 사고’의 창시자로 알려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의 [적극적 사고방식]이란 책이다. 작은 실천의 중요성을 경험하게 도와주는 책이다. 저자는 실천할 내용을 작은 메모 용지에 적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읽으라고 권한다.” 3)
이상 인용한 세 기사들이 잘 말해주듯이, 미국은 물론 한국사회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 1898-1993)은 1898년 오하이오주 바워스빌(Bowersville)에서 개신교 목사인 찰스와 안나의 세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소년 시절에 어니스트 홈스(Ernest Holmes, 1887-1960)의 신사상(New Thought) 운동에 이끌렸다. 필은 훗날 “소년 시절의 나를 알았던 사람들만이 어니스트 홈스가 내게 해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4)

노먼 빈센트 필(1966). 긍정적 사고론으로 미국은 물론 한국사회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뻥쟁이’, ‘악마 같은 목사’라는 비난을 받다
신사상운동은 미국의 초기 종교 이념인 칼뱅주의가 금욕과 엄격한 자기 절제를 강요함으로써 개인의 욕망을 억눌러 사회적 우울증을 낳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 일부 종교인들이 1800년대 중반부터 그런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일으킨 운동이다. 이 운동은 성공과 부를 찬미함으로써 자기계발운동(self-help movement)의 이론적 근거가 된 사상이다.
필은 보스턴 신학대학을 거쳐 1922년 감리교 목사가 되었지만, 1932년 칼뱅주의 계열 네덜란드 개혁교회(Reformed Church in America)로 종파를 바꾸면서 돈, 결혼, 사업 등 일상적인 문제를 풀 수 있게끔 기독교를 ‘실용화’하려고 했다. 신사상 운동이 그렇듯이 필은 부분적으로 자신을 치유자로 여겼다.
필은 1952년 자신을 세계적인 유명 인사로 만들어줄 결정적 계기가 된 책을 출간했는데, 그 책이 바로 그 유명한 [적극적 사고방식(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이다. 이 책은 186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수십 개국에서 수천만 부가 팔린 불멸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 당시 호평만 받은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정신분석을 공부한 적이 없는 필이 사실상 정신분석의 영역을 다뤘다는 이유로 여러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필의 자기암시법을 그대로 따라하는 건 위험하다고 경고했으며, 심지어 ‘필은 사기꾼’이라는 비난까지 나왔다.5)
필의 번영 신학은 교계 내에서도 적잖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뻥쟁이’에서부터 ‘악마 같은 목사’에 이르기까지 적잖은 비난이 쏟아졌다. 필은 이런 비난을 아버지의 강력한 정신적 지원으로 돌파해 나갔다. 부자(父子) 사이의 대화를 들어보자.
“아버지, 주요 성직자들 중 일부와 그 지도자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정말이지 차라리 사임하고 교회 밖에서 사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아버지는 그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구나. 넌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종이며 교회에 충실한 사람이다. 이 늙은 목사에게서 들은 말을 명심하거라. 그리고 한가지 더, 필 가문은 절대로 중도에 그만두는 법이 없단다.”6)
모든 것은 결국 자신감의 문제다
일반 독자들은 전문가들과 교계 일부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필의 성공학에 열광했다. 무엇보다도 필의 책은 당시 많은 미국인들이 안고 있던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하면서 그 해법까지 제시하였기에 뜨거운 대중적 지지를 누릴 수 있었다.
필은 이 책에서 “어느 대학의 심리학 교실에서 600여명의 학생들에게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개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한 일이 있었다. 놀랍게도 응답자의 75퍼센트가 ‘자신감의 결여’라고 대답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일반 사람들을 조사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이 세상 어디를 가도 막연한 공포에 시달리며, 적극적인 생활에서 도피해 버리고, 심각한 열등감과 불안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힘마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스스로를 책임질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거나 주어지는 기회를 붙잡을 만한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늘 회의적이며 언제나 모든 일이 뒤틀려 가고 있다는 막연하고 불길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자신이 바라고 있는 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결국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필이 제시한 ‘자신감을 키우기 위한 10가지 규칙’ 중 처음의 4가지만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자신이 성공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확실하게 그리고 그 영상이 지워지지 않도록 마음속에 확실하게 각인하라. 끈질기게 그 그림을 붙들고 늘어져라. 결단코 그 그림이 흐려지게 방치하지 말라. 당신의 마음은 그 그림이 실현되기를 염원하게 될 것이다. 결단코 자신이 실패하는 모습을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그린 그림의 실현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말라.”
“2.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이 마음에 떠오를 때에는 언제든지 신중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말하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을 완전히 몰아낼 것이다.”
“3. 당신의 상상 속에 장애물을 쌓아올리지 말라. 소위 장애물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을 과소평가하라. 그것을 극소화시켜라. 난관은 세밀히 검토해서 신중히 처리해야 하지만, 난관을 현재의 모습 그대로 보아라. 난관을 공포로 키워나가서는 안된다.”
“4. 다른 사람의 위세에 눌리거나 그들을 모방하려 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라도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만큼 효과적으로 당신이 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겉보기에는 자신감에 넘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은 그들도 당신처럼 불안을 느끼고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명심하라.”7)
자기계발 담론과 결합한 이런 종류의 ‘번영 신학’은 필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으며, 1950년대 전반의 시대정신이었다. 1954년 가톨릭 신부 풀톤 쉰(Fulton Sheen, 1895-1979)의 [행복의 길(Way to Happiness)], 1955년 남부 침례교 목사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1918-)의 [행복의 비밀(The Secrets of Happiness)]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 책들은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과 함께 50년대 전반을 풍미한 번영신학의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출간한 출판사는 기업 시장으로 눈을 돌려 “기업 임원 여러분, 이 책을 직원들에게 주십시오. 커다란 이익을 낼 것입니다”라는 광고를 냈다. 광고는 영업사원이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이 파는 상품과 자기가 속한 조직에 새로운 신뢰를 갖게 될 것이며, 내근 직원들의 효율성도 높아져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장담했다.8)

닉슨 대통령과 그의 가족, 노먼 빈센트 필(맨 오른쪽)이 뉴욕의 한 교회의 예배 참석 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1968.11. 25).
필은 온갖 고생에 허덕이는 영업사원들에게 위로와 더불어 용기를 심어 주었지만, 정치적으론 좀 다른 자세를 취했다. 그는 정치적으론 보수적이었으며, 그 가치의 실현을 위해 정치에 적극 개입했다. 공화당 후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와 민주당 후보 애들레이 스티븐슨(Adlai E. Stevenson, 1900-1965)이 맞붙은 1952년 대선에서 필은 스티븐슨이 이혼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스티븐슨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다시 아이젠하워와 스티븐슨이 경쟁한 1956년 대선에도 필이 반대운동을 전개하자, 스티븐슨은 “기독교인으로서 말하는데, 사도 바울은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지만, 필은 사람을 오싹하게 만든다(Speaking as a Christian, I find the Apostle Paul appealing and the Apostle Peale appalling).”고 쏘아 붙였다.
필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1913-1994)과 민주당의 존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가 맞붙은 1960년 대선에서도 케네디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이번엔 케네디가 가톨릭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필은 150명의 개신교 목사들을 대표해 카톨릭 대통령을 뽑으면 미국문화가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며, 미국의 이익보다는 카톨릭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비난이 빗발치자, 필은 자신의 발언을 취소했다. 그러자 이번엔 케네디를 반대하는 다른 목사들이 크게 반발해 필은 자신이 만든 위원회로부터 축출당한 건 물론 한동안 비난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9)
사그라지지 않는 ‘긍정적 사고’의 인기
필은 46권의 책을 썼지만, 모든 책들에 걸쳐 그의 메시지는 한결같다. 긍정하고 낙관하고 확신하면 꿈꾼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필의 이런 ‘긍정적 사고’가 가진 매력 또는 마력을 미루어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특히 실패와 좌절에 빠진 사람들에겐 그 얼마나 큰 힘이 되랴. 그래서 오늘날에도 긍정적 사고의 인기는 여전하다.
1997년 펜실베니아대 심리학 교수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이 미국 심리학회 회장 선거에서 당선돼 긍정심리학을 회장 재임 기간의 연구 주제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는 “셀리그먼이 심리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이전까지 긍정적 사고는 학계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1950년대의 지식인들은 노먼 빈센트 필을 조롱했고, 그로부터 40년 뒤의 학자들은 필의 계승자들을 하루살이 대중문화 현상이나 싸구려 행상으로 취급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지만 셀리그먼이 조종간을 잡자 (그리고 각종 재단의 자금을 잔뜩 끌어들이기 시작하자) 존경받는 박사급 심리학자들이 낙천성 및 행복감을 건강과 직업의 성공 같은 바람직한 결과와 연결시킨 학문적 저작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그중 상당수는 신생 [행복연구저널(Journal of Happiness Studies)]에 게재되었다 (…) 셀리그먼은 통속적인 긍정적 사고를 ‘사기’라고 비난하고 ‘10년 안에 실제로 효과가 있는 자기계발서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10)
아무리 필과 거리두기를 한다곤 하지만, 그래도 셀리그먼의 대표작인 [진정한 행복(Authentic Happiness)]엔 필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갖고 책을 읽었지만, 본문에선 필의 이름이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긍정심리학과 통속적인 긍정적 사고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각주에서 필의 이름을 단 한번 언급했을 뿐이다.11)
그러나 긍정심리학자들과 필은 억만장자 투자자인 존 템플턴(John Templeton, 1912-2008)을 매개로 만나고 있다. 필의 숭배자였던 템플턴은 1954년에 세운 템플턴성장펀드(Templeton Growth Fund)의 글로벌 뮤추얼펀드(mutual fund) 사업을 통해 억만장자가 된 사람이다. 그는 템플턴 재단의 2004년 보고서에서 70년 전에 읽은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무슨 깨달음? “짧은 인생에서 내가 무엇이 되느냐 하는 것은 나의 정신적 태도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보수적 이념 싱크탱크로 활약하고 있는 템플턴재단은 21세기 들어 10년 동안 셀리그먼의 긍정심리학센터에 220만 달러를 기부하고, 다른 긍정심리학 연구에도 13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긍정심리학과 통속적인 긍정적 사고 사이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12)

플로리다의 한 교회 앞에 ‘부정적 생각 금지’ (No negativity)라는 푯말이 붙어있는 모습. <출처: newthoughtdocumentary at en.wikipedia.org>
수많은 행복학 전도사들의 노력 덕분에 미국은 ‘행복 공화국’이 되었지만, 그 정체는 좀 아리송하다. 로날드 드워킨(Ronald W. Dworkin)은 2006년에 출간한 [모조 행복: ‘신행복계급’의 그림자(Artificial Happiness: The Dark Side of the New Happy Class)]에서 “‘인위적으로 행복한 미국인들’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계급을 형성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지금 미국엔 인위적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말한다.13)
그는 이 책에서 불행을 치료해야 할 질환으로 간주하는 의사들과 행복이 종교의 사명인 양 행복 전도사 노릇을 하는 종교인들을 비판했다. 물론 필도 비판의 주요 대상이다. 그런 식의 맹목적 행복 추구는 삶의 근본적인 진실을 무시하거나 회피하게 만들며, 불행을 낳는 실망과 슬픔과 고통도 우리 삶의 불가피하거니와 필요한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드워킨의 행복론이 더 현실적이다. 1년 365일 내내 화창한 날씨만 계속되면 화창한 날씨가 무어 그리 대단하겠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실망과 슬픔과 고통도 조금은 곁들여져야 행복의 기쁨도 커지는 게 아닐까? 실망과 슬픔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겐 너무도 한가하고 배부른 소리일까? 그래서 세속적인 성공학과 행복학 책들이 늘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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